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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굶주린 국민들의 모습을 본 故 전중윤 명예회장은
‘국민이 배불리 먹어야 나라가 평안하다’는 뜻을 품었습니다.
국민을 먹여 살릴 결심으로 하월곡동에서 ‘三養’의 역사를
시작했습니다. ‘삼양’은 천·지·인과 영양을 상징하며,
모두가 끼니 걱정 없는 세상을 바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1963년 전후의 제면기
어렵게 달러를 구한 전중윤 사장은
즉시 제면기를 도입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김포국제공항 출국장을 나서는 모습이다.
1963년 9월 15일,
대한민국이 만든 첫 번째 라면
삼양라면이 세상에 나온 날입니다.
우지로 맛을 낸 라면의 당시 가격은 10원이었습니다.
처음에 소비자들은 라면이라는 생소한 식품을 음식으로
보지 않았습니다. 매출은 3년간 적자였으며 은행 차입으로
버텨야 했지만, 급여만큼은 밀리지 않았습니다.
일본 신문보도
초창기 라면 생산 공장
라면 수요가 늘면서 원자재 부족이 문제로 떠올랐습니다. 튀김용 유지로 통상 사용하던 일본산 돈지(돼지기름) 수입이 막히자, 삼양은 전국에서 우지(소기름)을 모아 사용했습니다. 불균일한 품질문제는 고급우지를 수입하면서 점차 해결되었습니다.
세계 각 지역으로 수출되는 <삼양컵라면>
1965년 7월, 월 판매량이 100만 식을 넘었습니다. 이때부터 삼양라면은 고유명사가 아닌 일반명사로 자리 잡으며, 인스턴트 식품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발매 초기 삼양라면은 고춧가루가 없는 담백한 맛이었습니다. 이후 고춧가루와 참기름 등을 첨가하면서 국물은 매콤하고 고소해졌습니다.
1989년 11월, 검찰은 삼양 등 5개 식품 업체가
‘공업용 우지’를 사용한다는 제보를 받아 수사에 착수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인 조사와 전문가 검증조차 수반되지 않은 무리한 시도였습니다.
언론은 ‘수십 년간 먹어온 라면이 위험하다’ 라며 불안을
확산시켰고, 삼양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미 확증된 프레임을
풀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결국 삼양라면의 소매 유통은 중단되고,
전국적인 대규모 반품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4,600억 원의 벌금과 징역형을 구형 받았으나
끝끝내 1995년 7월 13일, 6년간의 재판 끝에
삼양식품은
결국 무죄 판결 받았습니다.
판사라는 신분을 떠나 어린시절에 삼양라면을 먹고자란 사람으로서 존경을 표한다. - 2005년 3월 서울지방법원 화의 종결 판결문 중 -
시련을 딛고 삼양은 ‘불닭볶음면'으로 다시 날아올라
뼈 아픈 사건때문에 잊혀야 했던 맛,
그리하여 많은 사람이 잊고 살아야 했던 맛,
그 맛을 요즘 라면에선 좀처럼 찾기 힘들다.
많은 사람들이 그 이유를 ‘우지’로 꼽는다.














